Page 11 - 문자와 상상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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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시헌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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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여 년 단위의 역서, 그리고 칠정력(七政曆)과 같이 해와  산해 만든 역서로서 1782년(정조 6)에는 이를 바탕으로 천
               달과 오행성의 위치를 계산해 놓은 천체력 등이 있었다.                      세력을 편찬했다. 그리고 천세력은 1904년(광무 8)에 만세
                 예를 들어 백중력은 간단하게 월의 대소(大小)와 함께  력으로 고쳐 간행해 중외에 반포되었다.

               24절기의 시각을 추산했으나 후에 칠정백중력(七政百中
               曆)의 이름으로 발행된 역서에는 24절기의 시각뿐만 아니                     양력의 사용과 달력의 대중화
               라 매일 매일의 역일(曆日)에 해당하는 칠정(七政), 즉 해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는 전통적인 한국의
               달과 오행성의 위치가 28수(宿)의 도수로 계산되어 기록되                    시간 체계가 근대적 시간 체계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그 변
               었다. 처음으로 발행된 칠정백중력은 1736년(영조 12)부터  화의 주축으로는 태양력에 기반을 둔 양력의 사용과 시계
               1767년(영조 43)에 이르는 32년간의 달력이었다. 1772년(영              의 대중화를 꼽을 수 있다. 특히 달의 주기와 간지를 기반
               조 48)에는 이 칠정백중력을 대통력(大統曆)과 시헌력(時                    으로 하는 음력과 달리, 요일제를 근간으로 하는 양력은 ‘7
               憲曆)의 방법으로 계산한 대통칠정백중력(大統七政百中                        일=1주일’이라는 주일의 시간 개념을 도입했다. 19세기 말
               曆)과 시헌칠정백중력(時憲七政百中曆)이 각각 간행되었                       근대 동아시아에서 일어났던 양력으로의 개력은 천문학

               다. 또한 1780년(정조 4)에는 대통력과 시헌력의 방법으로  적 이유도, 근대적 이유도 아닌 제국주의의 침략에서 비롯
               계산한 100년간의 역서가 새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100년                   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명분을 내걸
               간의 해와 달과 오행성의 운행 및 절후(節候)의 변동을 추                    고 양력을 택했으며, 근대 국가의 표피적 모습을 본뜨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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