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문자와 상상05호
P. 7

한 해와 한 달의 시작일을 정하다                                  서 인월(寅月)을 새해의 정월로 삼았다. 이에 따라 주의 정
                 전통시대에 천체력이든 일반 달력이든 시간과 날짜의  월인 천정은 11월, 은의 정월인 지정은 12월에 해당되게 되
               기준을 정하는 데는 정치적 속성과 관계가 있었다. 대한제                     었다. 이러한 연유로 동지가 든 11월을 천정동지(天正冬
               국 시기에는 그때까지 사용하던 음력을 버리고 유럽식의  至)라 부르는데, 11월 천정동지는 중국역법에서 모든 계산
               그레고리력을 사용했다. 이것은 음력이 정확하지 않아서                       의 기점이 된다. 특히 천정동지가 든 달의 삭일을 천정경삭
               가 아니다. 음력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양력에 비해 우리나                    (天正經朔)이라 해서 천정경삭으로부터 세 번째 달의 삭일

               라의 실정에 훨씬 더 잘 맞고 정확한 달력이다. 밀려들어  을 새해 첫날로 하고 있다. 옛날에는 초생달이 보이기 시작
               오는 서양의 물결 앞에서 현실적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지  하는 초 3일을 비(朏)라 해서 한 달의 시작일인 초하루로 한
               결코 양력이 우수해서가 아니었다. 양력을 쓰기 시작하고  적이 있었다. 그러나 태초력 이후 현재까지는 해와 달이 지
               백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명절이나 제삿날 등을 음력                      구와 일직선상에 놓여 달이 해를 가리는 삭일(朔日)을 초
               에 맞추고 있는 것을 보면 음력이 지닌 과학적인 힘을 엿볼  하루로 하고 있다.
               수 있다.
                 본래 1년, 12달, 하루의 시각을 정하는 역법(曆法)이란  시간의 독점과 천명의 정당화
               집권자가 만든 일종의 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역법은                        시간이 사람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게 된 것은 근대사회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이후이다. 전근대 한국과 중국은 이른바 시간을 기록해 놓

               들의 정서를 반영해야 하는 것이므로 권력자 마음대로 주                      은 ‘달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있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시
               무를 수 없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또한 역법은 어떤 형                    간은 ‘관상수시(觀象授時)’라 해서 지배자의 영역에 속한
               태로든 중앙집권적인 정치 체제가 갖추어진 사회에서만  것이었다. ‘관상’이 하늘의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라면, ‘수
               사용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역법은 정치적이고                     시’는 그러한 관찰을 통해서 정확한 시각을 알아내고 이것
               도 정서적인 측면이 모두 고려된 하나의 정책이었다.                        을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시간을 알아내는 사
                 달력의 오랜 숙제 중 하나는 바로 어느 날을 새해 첫날                    람은 위정자들이었고, 피지배층은 그들이 일방적으로 정
               로 정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 해와 한 달의 시작을 세수                    해 준 시간을 받아야 했다. 시간은 독점되어 있었고, 이를

               (歲首)와 월수(月首)라고 하는데, 세수와 월수를 정하는 방                   거부하는 사람은 형벌을 받았다.
               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                       전근대 동아시아 국가의 군주들은 왜 시간을 독점적으
               와 은(殷)나라 그리고 하(夏)나라의 역법은 모두가 달랐다.  로 측정하고 백성들에게 이를 알려주고자 했을까. 그것은
               주는 동지가 든 달을, 은은 동지 후 두 번째 달을, 하는 동지  군주의 절대 권력이 하늘로부터 나온다는 관념 때문이었
               후 세 번째 달을 한 해의 정월(正月)로 삼았다. 동지가 든 달                 다. 군주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명(命), 즉 천명(天命)을
               이 자월(子月), 그 다음 달이 축월(丑月), 그리고 동지 후 세  받은 자였다. 그리고 군주의 천명은 관상수시를 통해 그 정
               번째 달이 인월(寅月)이므로 이를 자정(子正), 축정(丑正),  당성을 부여받았다. 동아시아 국가의 군주들은 천명을 받
               인정(寅正)이라 불렀다. 또한 주의 정월[周正]을 천정(天                    은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하늘의 현상을 관찰했는데, 그
               正), 은의 정월[殷正]을 지정(地正), 하의 정월[夏正]을 인정                중에 하나가 시간의 측정과 보시(報時)였다. 시간은 하늘
               (人正)이라 부르기도 했다.                                     에 있는 천체들이 규칙적으로 운행하는 것을 관찰함으로

                 중국의 역법은 한(漢)나라 태초력(太初曆) 이후 계속해                    써 얻어지는 것이다. 하늘이 주는 시간을 독점적으로 장악


 4                                                                                                                  5
   2   3   4   5   6   7   8   9   10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