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 - 문자와 상상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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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_ 달력과 시간








                                         텅 빈 시간의 공포와


                                                   점술의 시간




                                           조선시대 역서의 시간의식과 우주론


                                                    이창익 _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강사






                                       조선시대 역서는 현재 우리의 역서보다 훨씬 복잡하다.
                                           역서에 천문학적 지식 말고도 점성학적 내용이

                                                 가득 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점성학적 해석 없이는
                                               미래의 불안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천문학적 지식의 발전은 역서(曆書)와 천문(天文)의 불                    에서 살았다. 조선시대 달력을 보기 전에 우리는 과거의 사
               일치를 줄임으로써 인간이 하늘의 움직임을 더 완벽하게  람들이 우리보다 더 단순한 시간 안에서 살았을 것이라는
               모사하고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더 정확한 역서를 제작한다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는 이와 전혀 달랐다.
               는 것은 인간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                    그렇다면 왜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우리보다 더 복잡한
               한다. 역서 제작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인간은  미래가 필요했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다.
               역서를 통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구성할 수 있다.                       둘째, 우리는 조선시대 역서가 왜 복잡할 수밖에 없었는

               그리고 더 정확한 미래에 대한 그림을 가질 때 인간은 시간                    지, 그리고 복잡한 역서에서 어떤 내용이 사라지면서 역서
               의 불확실성을 통제함으로써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향상                       가 더 단순한 것으로 변했는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조선시
               시킬 수 있다.                                            대 역서에서 왜 무엇이 어떤 방식으로 사라졌는가? 조선시
                                                                   대 역서가 복잡한 것은 역서에 천문학적 지식 말고도 점성
               천문학과 점성학이 결합된 시헌력                                   학적 내용이 가득 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조선시
                 조선시대에는 해마다 역서를 제작해 반포함으로써 왕                       대 역서에는 시간의 길흉에 대한 수많은 역주(曆註)가 기
               이 백성에게 다음 해의 시간, 즉 미래를 미리 선물했다. 그                   재되어 있다. 천문학은 시간의 형식이고 점성학은 시간의

               런데 조선시대 역서를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두 가지 의                     내용이었다. 아마도 천문학적 지식만으로 구성되는 단순
               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미래는 조선시대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 것 같다.
                 첫째, 조선시대 역서는 현재 우리의 역서보다 훨씬 복잡                    미래에 대한 점성학적 해석 없이는 미래의 시간이 주는 불
               하다. 우리의 상식적 직관과 달리 역서는 복잡한 것에서 단                    안을 있는 그대로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순한 것으로 발전했다. 천문 지식의 발달이 오히려 역서를                        천문학적 지식의 진보에도 불구하고 조선 전기의 대통
               더 단순하게 변형시킨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지금 우                     력(大統曆)과 1653년부터 사용한 조선 후기의 시헌력(時憲
               리보다 훨씬 복잡한 미래를 구성했고, 훨씬 복잡한 시간 안                    曆)의 역서는 그 내용이나 구조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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